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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오직 예수(마 17:1-8)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1040    

오직 예수(마 17:1-8)

지난 1년 동안 내가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이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두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오직 예수! 예수님만이 우리의 최대의 값어치요, 예수님만이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1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왜 세 명의 제자는 특별히 사랑을 받았습니까?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 제자를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많은 제자들 중에서 이 세 제자만 데리고 올라갔습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 세 제자를 사랑했습니까?

(1)그것은 바로 이 세 제자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 제자가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신자가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섬기고 받들던 사람들도 여러 부류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새해부터는 최소한 열 두 제자 속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좀 더 나아가서 세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면서 금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별로 신분이 높지 못한, 오히려 천대 멸시 받는 사람들, 돈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 특히 다혈질의 성격을 소유한 수제자인 베드로는 과격하고 급한 성격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제자로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고기를 잡고 있는데 "베드로야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예수님을 따라 가겠습니까? "예수님, 좀 더 생각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과 의논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를 마음이 있어도 배와 그물을 정리해야 하며, 가족들의 살 길도 준비해놓고, 그런 후에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그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세리 마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관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마태야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사표도 내야하고 퇴직금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더라도 준비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저 없이 즉시 그 자리에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섬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내 마음에 맞든지 안 맞든지,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혹은 유익이 되든지 안 되든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할 수 있고 위대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하면 "높은 산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이 산은 헬몬산이라고 합니다. 또는 변화산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에덴동산"입니다. 온 세상이 물로 멸망당한 후에 새로운 인류의 출발점이 "아라랏산"이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산"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산은 신앙의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중대한 일이 있으면 산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갔다" 이것은 특별한 기회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 하다가 특별한 기회를 만나서, 아니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금식기도, 산기도, 철야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특별한 만남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연말을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자신을 깊이 돌이켜보고, 하나님과 내 자신의 관계를 살펴보고, 내 자신을 재정비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2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언제 변형 되었는가?
따로 높은 산에 올랐습니다. 올라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변형이 되셨는데,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2절에서 '변형'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수동과거분사입니다.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되는 것, 즉 본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일부분만 변화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몸을 입으셨는데(성육신 Incarnation), 이제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에 예수님께서 변화가 되었습니까? (눅9:28-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그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변화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할 때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 기독교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경고를 받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변화된 교인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예배드리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가 부족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짧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만큼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죄성을 덮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겸손하게 되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 정직하게 되고, 거칠고 과격한 사람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인격이 변화될 때에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3절)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제자들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변화된 모습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보다 1500년 전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예수님보다 900년 전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재림하실 것을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이고, 모세는 율법의 대표입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의 예표(豫表)이며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상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시체가 없고, 엘리야는 죽음 없이 승천해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보다 1500년 전에 모세가 태어났고 예수님보다 900년 전에 엘리야가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는 영원한 현재뿐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시간이 지나가고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마지막이 있기 때문에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 미래가 없습니다. 영원한 현재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한 마디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떠나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베드로의 말은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영적인 체험을 했으면 이제는 그곳에 더이상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만 예수를 믿게 되고 나가면 복음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교회 안에서의 기독교로서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에 기독교인으로서 혹은 기독교로서의 구실을 하는 것이며 존재가치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탄일에 모여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곳에 모여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 성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전에 나아와서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아직까지도 주님의 탄생을 모르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성탄의 복음을 전하고 도와주고 구제하는 일이 성탄의 참다운 의미라는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실수했습니까?
깊이 졸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졸다가 깨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눅9:32) 졸다보니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졸다 보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영적으로 졸면 사명을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졸다가 자기의 일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고의 귀를 자르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졸다가 주님을 멀찍이 쫓았습니다. 졸다가 예수님 심문받는 고난의 그 시간에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졸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잘 때와 깰 때가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기도하지 않ㅎ는 생활을 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새해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졸게 되면 사명을 망각하게 되고, 졸게 되면 예수님을 멀리 떠나가게 되고, 졸게 되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예수님께서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며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니라(눅3:21-22)"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똑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위엄과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인간이 영원히 죽었던 허물과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엡2:1-7) 구원해 주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6절)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이 소리를 듣고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엎드려 무서워 떨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묘하신 분이요, 크신 분이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교회의 비극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언어, 우리의 행동을 할 때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생각해야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말해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무서워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 일으키시면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두려워말라!"라고 했습니다.

8절)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니라"
제자들이 눈을 들어보니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삶의 전부가 되셔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참다운 예수의 사람,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회가 변화하여 새로워지리라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참 제자들인 열 두 제자와, 세 제자와 같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며, 예수님을 바로 섬기며, 무릎 꿇고 기도해서 예수님을 닮아가시길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받은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서 이웃과 온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셔서 이제부터 새해에는 보다 새롭게 한 걸음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값어치 있고 보람된 생활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눅 2:2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