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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 한 해를 어떻게 살았던가?(고전 10:31-33)
   글쓴이 : 바이블넷     조회 : 1026    

한 해를 어떻게 살았던가?(고전 10:31-33)

2009년도 어느덧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길도 어느 때와 달리 사뭇 진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좀 더 믿음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좀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자책하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생각하는 능력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면서 잘못을 뉘우치게 되는데, 하루의 일은 저녁에 뒤돌아보고, 한 해의 삶은 연말에 뒤돌아보며, 한 평생의 발자취는 인생의 석양에 서서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해를 보내는 이 시점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 신자다운 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밀림에 들어가 사는 문명 세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문명 세계에서 왔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삽니다. 원주민들이 옷을 벗고 산다고 해서, 함께 벗고 살지 않습니다. 원주민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함께 손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를 씁니다.

왜냐하면 비록 원주민들과 함께 섞여 살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문명 세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속한 원주민들과는 사는 방식도 같지 아니하고, 삶을 평가하는 방식도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해를 뒤돌아보는 이 시간 3 가지 면에서 각자 자신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살았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지혜롭게 인간을 창조 하사,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통치권을 주신 것은,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존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는 것입니다.

1)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자연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시 19:1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고 하였습니다. 밤하늘에 은가루와 같이 뿌려진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일초의 오차 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춘하추동 사계절을 이루어, 봄에는 아름다운 꽃들로,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가을에는 고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하얀 눈이 온 땅을 덮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영계(靈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계시록 4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24 장로와 네 생물과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곧 천상의 영계에서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광경입니다.

(3)성도 역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자연계에서도 영계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피조물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계보다, 자연계보다,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을 통해서, 더욱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어떻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1)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고전 6: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 사도 바울은 그의 몸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됨을 확신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 사도 바울이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달란트, 내가 경영하는 사업체, 내 자녀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위탁하신 것을, 어떻게 잘 관리하며 값있게 사용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릴까 명심하여 힘쓸 때, 이것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에 부합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나는 한 해 동안 과연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던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살았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불신자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대인 관계를 항상 조심해야 하되,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심해야 합니다. 전도를 하다가 보면 대단히 언짢은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즉 불신자들의 입을 통해 가끔 나오는 말이, 돈을 빌러 가고 안 갚는 사람이 기독 신자요, 부도내고 모르겠다 오리발 내미는 자가 집사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 때문에 당신네 교회는 가기 싫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기독 신자의 대표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런 사람보다는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신자가 더 많이 있으며, 그 사람도 예수 믿기 전에는 더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변명을 합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상처받기 쉬우니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행여나 지난 한 해 내 행동으로 인하여 신앙 없는 이웃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 주지 않았는지, 내 실수로 인해 천국의 길을 가로막고 전도의 문을 닫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고,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아픈 마음으로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2)신자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피로 하나 된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리라.” 금년에 우리 교인 중에서나, 구역식구 중 나 때문에 실족한 사람은 없는가? 나 때문에 믿음의 형제가 상처를 받지 않았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로 인해 교회가 부흥되기는커녕, 나 때문에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지는 않았는가? 나로 인해 교회가 은혜롭고 화목하지는 못할망정, 나로 인해 교회가 원망과 불화에 빠지게 하지는 않았는가? 데메드리오와 같이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 빠지고, 미리암처럼 원망과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데 커다란 지장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금년에 교회를 받들어 섬기면서 내게는 이러한 잘못이 없었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거치는 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말에 덕이 있어야 합니다.

엡 4:29에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말은 습관입니다. 큰소리로 싸우듯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 말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긍정적이고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하고 날카로운 단어만을 골라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말 선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에 예의와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치과 의사는 사람의 이는 이빨이 아니며, 이빨은 짐승에게나 붙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환자가 찾아와 “이빨 좀 봐주세요. 윗 이빨이 아프고 아랫 이빨도 아프고 온통 이빨이 신통치 않아 큰일입니다.”라고 말하자 이 의사가 “눈깔은 괜찮고 배때기와 대가리는 아프지 않습니까?” 라며 응대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름답고 순화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하고 더러운 말은 의당 하지 말아야 하지만, 선한 말 바른 말, 덕을 세우는데 필요한 말은 꼭 해야 합니다. 남에게 싫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혹은 목사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까 보아서, 눈치나 보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고, 선한 성품 때문에서도 아니고,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처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사상과 마음과 교양과 인격과 신앙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말이 악하면 마음이 악하고, 말이 더러우면 인격이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에 항상 덕이 있어야 합니다.

(2)비판하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지독한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비판하기 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네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굉장히 풍자적인 말씀입니다. 티와 들보는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 눈은 워낙 예민해서 작은 티만 들어가도 충혈이 되고 눈물을 흘립니다.

들보가 무엇입니까? 천정을 가로질러놓은 대들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티하고 들보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 눈에 들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비판 받는 사람은 자기 눈에 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나쁘냐? 비판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 나쁜가 하면, 들보가 티보다도 천 배 만 배 큰 것처럼, 비판하는 사람은 비판 받는 사람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문 중 일부분입니다. <사랑의 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고, 나름대로 건강하게 오늘까지 주님의 일을 위해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를, 저는 주저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비판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간혹 비판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 1-2년 지나고 나면 어디를 갔는지 사라지고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판 안 하면 잠이 안 옵니다. 남의 말을 안 하면 몸이 근지러워 살지 못합니다. 자기 말을 받아주는 그런 환경이 되어야 신이 나서 뭐든지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교회 와서 이말 저말을 해보니 통하지를 않잖습니까? 바탕이 자기 말을 받아주지 않으니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간 교회는 불행하지만....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변을 한번 보십시오. 교회 중직을 맡고 있는 분들이 목사가 하는 일마다 이리 비판하고, 저리 비판하고 서로 모이면 쑥덕쑥덕하는 교회 치고 제대로 성장하는 교회 보셨습니까? 건강한 교회 보셨습니까? 과거에 그런 일을 하다가 사랑의 교회에 오신 분들은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 보셨습니까? 성도들끼리 서로서로 모여 앉으면, 이쪽에는 저쪽 이야기하고 저쪽은 이쪽 이야기 하면서 서로가 비판하는 그런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 보셨습니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축제를 경험하는 것을 보셨는가 말입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자기 눈에는 큰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눈에 있는 티를 가지고 탓한다면 이 얼마나 자기모순입니까?

그런 모순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순을 안고 살면 그 인격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소리 잘하는 사람은 자기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든지, 아니면 남의 티가 들보처럼 커 보이는 이상 안구를 끼고 있는 환자이든지, 아니면 자기의 들보를 숨기기 위해서 남의 자그마한 티를 가지고 과장하는 외식주의자이든지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타인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았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3절 하반 절에 보면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면, 교회 부흥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가 구제하는 일, 사랑의 교제 등 좋은 영향을 사회에 주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수가 많아져서 대부흥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웃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버림을 받아 세상에서 짓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의 목표를 보면 1)선교하는 교회 2)교육하는 교회 3)봉사하는 교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을까요? 이 세 가지 목표들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목표에도 봉사하는 교회라는 목표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어려운 재정 형편 가운데서도 금년에 노인대학을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지역 일대에서 우리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잘 아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인데, 인간은 세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거미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사는 사람이 있고, 둘째는 개미 같은 인간으로서,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셋째는 꿀벌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크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사람은 남을 위해 희생함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만민을 위하여 고난의 잔을 받으시고 희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나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희생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의 결과로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목적이요,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인 것입니다. 많은 이웃에게 유익을 주며 살되, 궁극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최고의 선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를 어떻게 살았던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해 동안 나의 삶은 1)몸으로나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었는가? 2)불신자에게나 신자에게나 교회에서 혹시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았던가? 3)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 봉사하며 살았던가? 이렇게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성도들의 삶은 결코 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같을 수 없습니다.

사는 방식도 같을 수 없고, 삶을 평가하는 방식도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해 동안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었는지 실패였는지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느냐에 있지 않고, 오늘 선포한 말씀처럼 살았느냐, 살지 못했느냐에 달렸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시간 증거한 말씀처럼 살지 못했다면, 우리 모두 중심에 깊은 회개가 있으시기 바라고, 다가오는 새 해에는 꼭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눅 2:25-39)